맨위로가기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에 있는 마애불로, 고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3m, 폭 4m의 바위에 감실을 파고 그 안에 조각된 이 불상은 석굴 양식의 변천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현재 남산에 남아 있는 불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드러운 양감과 안정된 구도, 삼국시대의 고졸미를 보여주는 특징을 가지며, 선덕여왕의 얼굴을 모델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경주 남산 - 남산 (경주)
    경주 남산은 신라 시대 유적을 다수 포함하여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왕릉과 포석정, 삼존석불, 마애보살좌상 등 역사 유적과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는 산이다.
  • 경주 남산 -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통일신라시대에 경주 남산 칠불암에 조성된 마애불상군으로, 동쪽 암벽의 삼존불상과 사방불이 새겨진 기둥 모양 돌이 있으며, 특히 삼존불상은 국제적인 양식과 뛰어난 조각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자 사방불은 석탑 사방불 조형에 영향을 준 조각사적 의의를 지닌다.
  • 경주시의 보물 -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굴불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사방불 형식 석조 조각상으로, 각 면에는 아미타불, 약사여래, 석가모니불, 미륵보살이 조각되어 있으며, 창건 설화와 함께 통일신라 시대 조각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 경주시의 보물 - 경주 불국사 대웅전
    경주 불국사 대웅전은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 후 조선 시대에 중창된 다포계 양식의 건축물로, 창건 당시의 기단과 석조물이 보존되어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 마애불 -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굴불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사방불 형식 석조 조각상으로, 각 면에는 아미타불, 약사여래, 석가모니불, 미륵보살이 조각되어 있으며, 창건 설화와 함께 통일신라 시대 조각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 마애불 -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높이 13m의 화강암 마애불로서, 부드러운 신체 표현과 힘있는 얼굴 선이 특징이며, 과거 목조 건축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구멍이 있고, 덕주 공주 창건 설화가 전해지나 조성 시기와 차이가 있으며, 고려 초기 지방 호족 세력의 불교 번성을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6년 11월 모습
2016년 11월 모습
이름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영어 이름Rock-carved Seated Buddha in Bulgok Valley of Namsan Mountain, Gyeongju
지정 번호보물 198호
유형보물
지정일1963년 1월 21일
시대삼국시대
소유자국유
관리자경남 경주시
참고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

2. 역사적 배경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으로 인해 계곡 이름을 부처 골짜기라고 부르게 되었다.[1]

3. 특징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안정된 구도, 단아한 형태, 부드러운 양감을 보이면서도 내면에서 발산하는 불력을 은은히 표현하여 삼국시대의 고졸미를 대표하는 불상이라 할 수 있다.[4] 감실은 입구가 아치형으로 되어 있어 석굴의 느낌을 주는데, 단석산의 석굴사원, 군위 제2석굴암과 함께 석굴 양식의 변천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2]

이 불상은 왕즉불 사상에 따라 실제 선덕여왕의 얼굴을 본존불의 모델로 하였다는 김기흥 교수의 주장이 있다.[5][6]

3. 1. 형태

경주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바위에 깊이 1m의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이다.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듯하며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둥근 얼굴은 약간 숙여져 있으며,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인왕리 석불좌상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세가 아름답고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으며, 옷자락은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삼국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으로 인해 계곡 이름이 부처 골짜기라고 불리게 되었다.

높이 3m, 폭 4m 정도 되는 바위에 높이 1.7m, 폭 1.2m, 깊이 0.6m의 감실을 파서 그 안에 새긴 것으로, 불상의 높이는 1.4m 정도이다. 감실은 입구가 아치형으로 되어 있어 석굴의 느낌을 주며, 단석산의 석굴사원, 군위 제2석굴암과 함께 석굴 양식의 변천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2]

배를 그러안은 듯한 손갖춤을 짐작할 수 있는 대의(大衣)나 치마처럼 대의가 좌대를 덮는 상현좌(裳懸座)는 백제의 예산사면석불이나 태안마애삼존불에서 양식적 기원을 찾을 수 있다.[3]

얼굴은 고부조로 도드라지게 표현되었으나, 몸은 저부조로 얕게 조각되었다. 육계는 낮고 머리는 소발이며, 고개를 약간 숙여 명상에 잠긴 듯하다. 얼굴은 부드러운 양감으로 조각되었는데, 광대뼈가 나오고 눈두덩도 불거져 있다. 어깨는 각지게 표현되어 상체가 네모나다. 두 손도 소매에 넣어 가슴에 모아 전체적으로 네모진 모습이 안정감을 준다. 오른발을 왼발 위에 올렸는데, 발이 유난히 커서 삼국시대의 큰 손발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불의는 통견인데 두께가 느껴지고 옷깃이 매우 넓어 태안마애삼존불에서 볼 수 있는 삼국시대 옷깃 조각의 전통을 보여준다. 모든 옷 주름 선은 선각으로 표현되었다. 소매에서 내리는 선묘들은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무릎 위의 선도 물결처럼 겹겹이다. 무릎 아래서 흘러나오는 주름이 2단을 이뤄 대좌를 덮어 상현좌를 이룬다.

이처럼 안정된 구도, 단아한 형태, 부드러운 양감을 보이면서도 내면에서 발산하는 불력을 은은히 표현하여 삼국시대의 고졸미를 대표하는 불상이라 할 수 있다.[4] 왕즉불 사상에 따라 실제 선덕여왕의 얼굴이 본존불의 모델이라는 김기흥 교수의 주장이 있다.[5][6]

3. 2. 양식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것 같은데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약간 숙여져 있으며,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인왕리석불좌상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세가 아름답고 여성적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는데,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2]

높이 3m, 폭 4m 정도 되는 바위에 높이 1.7m, 폭 1.2m, 깊이 0.6m의 감실을 파 그 안에 새긴 것으로 불상의 높이는 1.4m 정도이다. 감실은 입구가 아치형으로 되어 있고 석굴의 느낌을 주는데 단석산의 석굴사원, 군위 제2석굴암과 함께 석굴 양식의 변천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2]

배를 그러안은 듯한 손갖춤을 짐작할 수 있는 대의(大衣)나 치마처럼 대의가 좌대를 덮는 상현좌(裳懸座)를 볼 때 백제의 예산사면석불이나 태안마애삼존불에서 그 양식적 선구를 찾을 수 있다.[3]

얼굴은 고부조로 도드라졌으나 몸은 저부조로 얕게 조각되어 있다. 육계는 낮고 머리는 소발이며 고개를 약간 숙여서 명상에 잠긴 듯하다. 얼굴은 부드러운 양감으로 조각되었는데 광대뼈가 나오고 눈두덩도 불거져 있다. 어깨를 각지게 표현하여 상체가 네모나다. 두 손도 소매에 넣어 가슴에 모아서 전체적으로 네모진 모습이 안정감 있게 보인다. 오른발을 왼발 위에 올렸는데 발이 유난히 커서 삼국시대의 큰 손발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불의는 통견인데 두께가 느껴지고 옷깃이 매우 넓어 태안마애삼존불에서 볼 수 있는 삼국시대 옷깃 조각의 전통을 볼 수 있다. 모든 옷 주름 선은 선각으로 표현되었다. 소매에서 내리는 선묘들은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무릎 위의 선도 물결처럼 겹겹이다. 무릎 아래서 흘러나오는 주름이 2단을 이뤄 대좌를 덮어 상현좌를 이룬다. 이처럼 안정된 구도, 단아한 형태, 부드러운 양감을 보이면서도 내면에서 발산하는 불력을 은은히 표현하여 삼국시대의 고졸미를 대표하는 불상이라 할 수 있다.[4] 선덕여왕의 얼굴이 본존불의 모델이라는 김기흥 교수의 주장이 있다.[5][6]

3. 3. 세부 묘사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듯하며,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둥근 얼굴은 약간 숙여져 있고,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이러한 점은 인왕리석불좌상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세가 아름답고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으며, 옷자락은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2]

배를 그러안은 듯한 손갖춤을 짐작할 수 있는 대의(大衣)나 치마처럼 대의가 좌대를 덮는 상현좌(裳懸座) 양식은 백제의 예산사면석불이나 태안마애삼존불에서 그 선구를 찾을 수 있다.[3]

얼굴은 고부조로 도드라졌으나 몸은 저부조로 얕게 조각되었다. 육계는 낮고 머리는 소발이며, 고개를 약간 숙여 명상에 잠긴 듯하다. 얼굴은 부드러운 양감으로 조각되었고, 광대뼈가 나오고 눈두덩도 불거져 있다. 어깨는 각지게 표현되어 상체가 네모나며, 두 손은 소매에 넣어 가슴에 모아 전체적으로 네모진 모습이 안정감을 준다. 오른발을 왼발 위에 올린 모습에서 삼국시대 불상의 큰 손발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불의는 통견으로 두께가 느껴지며, 옷깃이 매우 넓어 태안마애삼존불에서 볼 수 있는 삼국시대 옷깃 조각의 전통을 잇고 있다. 옷 주름 선은 모두 선각으로 표현되었고, 소매에서 내리는 선묘들은 폭포처럼 흘러내리며, 무릎 위의 선도 물결처럼 겹겹이 표현되었다. 무릎 아래서 흘러나오는 주름은 2단을 이뤄 대좌를 덮는 상현좌를 이룬다. 이처럼 안정된 구도, 단아한 형태, 부드러운 양감을 보이면서도 내면에서 발산하는 불력을 은은히 표현하여 삼국시대의 고졸미를 대표하는 불상이라 할 수 있다.[4] 선덕여왕의 얼굴이 본존불의 모델이라는 김기흥 교수의 주장이 있다.[5][6]

참조

[1] 간행물 문화재청고시제2010-89호(국가지정문화재 보물지정) http://gwanbo.mois.g[...] 관보(정호) 2010-08-25
[2] 백과사전 사회 I·문화재 > 문 화 재 > 중요 문화재 > 경상북도 > 남산 불곡석불좌상
[3] 서적 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1 대원사 2006-11-30
[4] 논문 慶州南山佛蹟의 變遷과 佛谷龕室佛像考 2012-02-23
[5] URL http://www.kjdaily.c[...]
[6] 웹인용 “첨성대, 선덕여왕 꿈 담긴 宇宙木” http://www.kyongbuk.[...] 2004-10-1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